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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슬렁어슬렁, 맘껏 두리번거릴 자유를 꿈꾸다


어슬렁어슬렁, 자유롭게 거니는 여행

“목표가 뭡니까?” “목적지가 어디예요?” 가끔 이런 질문을 들으면 머릿속이 하얘진다. 사실 목적지가 없이 걸을 때도 있고, 뚜렷한 목표가 없이 무언가를 열심히, 그야말로 최선을 다해 집중할 때도 있기 때문이다. 우리의 모든 행동을 목표와 성과로 재단한다면 삶이 얼마나 삭막해질까. 여행이 내게 주는 기쁨 중 하나는 목적 없는 어슬렁거림, 뚜렷한 목표 없는 두리번거림이 주는 해방감이다. 때로는 지도를 보면서 ‘어디로 갈까’ 고민하는 것조차 머리 아픈 일이라 그냥 하염없이 이국의 낯선 거리를 거닐고 또 거닐 때가 있다. 프랑스 남부의 도시 몽펠리에가 그랬다. 몽펠리에는 프랑스에서 스페인으로 넘어가기 위해 잠시 들른 곳이었다. 휴식 차 들른 곳이었으니 정해진 일정이 없었다. 그저 하루 쉬고 가야지 하는 생각뿐이었는데, 아무런 목적 없이 어슬렁거리다보니 이 도시가 얼마나 아름다운 곳인가를 우연히 발견하게 되었다.
어슬렁어슬렁, 우연히 발견한 행운 당시 빈센트 반 고흐의 흔적을 따라 가는 여행을 기획하면서 책을 구상 중이었는데, 몽티셀리의 거리를 걷다 보니 파브르 미술관이 나왔다. 어디서 많이 들어본 곳인데, 어디였더라. 기억의 보물창고를 뒤지다보니 반 고흐와 폴 고갱이 함께 와서 엄청난 논쟁을 벌였던 바로 그 미술관이었다. 사실주의의 거장 쿠르베의 작품들이 소장되어 있는 중요한 미술관이기도 했다. 일부러 찾아온 곳이 아닌데 이토록 소중한 발견을 하다니. 이런 것이 바로 ‘세렌디피티(뜻밖의 발견)’다. 내가 특별히 계획하거나 의도한 것이 아니었는데, 우연히 발견하게 되는 삶의 기쁨. 나는 지체없이 미술관으로 들어가 조용하면서도 아늑하고 지적이면서도 우아한 분위기로 가득한 파브르 미술관의 아름다운 컬렉션을 감상했다. 아무런 기대도 하지 않았는데 찾아온 이 삶의 기쁨 속에서 나는 ‘어슬렁거림의 축복’을 음미했다. 내가 몽티셀리를 아무런 목적 없이 어슬렁거리지 않았더라면 이 아름다운 미술관을 발견할 수 없었겠지. 이런 생각을 하자 더욱 ‘헤매고, 두리번거리고, 어슬렁거리는 일’의 아름다움이 마음 속에서 소중하게 반짝이기 시작했다.




어슬렁어슬렁, 누군가와 만나는 기쁨

대낮의 어슬렁거림이 끝나가자 저녁의 어슬렁거림이 시작되었다. 알고 보니 그날은 몽티셀리의 여름 축제일이었다. 온갖 상품들과 먹거리가 가득한 거대한 장터가 열리고, 10유로만 내면 귀여운 와인잔과 와인 3회 시음권을 주는 행사도 진행되고 있었다. 파리의 비싼 물가에 비하면 몽티셀리는 천국이었다. 무엇을 골라도 저절로 ‘싸다’라는 생각이 드는 멋진 상품들이 많았고, 나는 어느새 와인잔을 들고 ‘행복한 이방인’이 되어 축제의 장소 한복판에서 울려 퍼지고 있는 락 페스티발의 멜로디를 흥얼거리고 있었다. 스팅(Sting)의 <잉글리쉬맨 인 뉴욕(Englishman in New York)>이 흘러나오는데, 어디선가 마쉬멜로우처럼 부드럽고 달콤한 목소리가 그 노래에 독창적인 화음을 얹어 아름다운 선율을 만들어내고 있었다. 소리가 나는 쪽을 바라보니 치렁치렁한 레게머리를 발랄하게 흔드는 멋진 흑인 여성이 나를 향해 찡긋 웃어보였다. “당신의 목소리는 정말 아름답다”고 칭찬을 해주었더니 그녀는 싱긋 웃으며 사실은 자신이 유명하지는 않지만 앨범도 낸 적이 있는 가수라고 고백했다. 나는 ‘역시 목소리가 심상치 않았는데, 가수였구나’하고 감탄하며, 그녀와 더듬더듬 수다를 떨었고, 결국 그 자리에서 그녀의 음반까지 샀다. 친구로부터 핀잔을 듣긴 했지만, 전혀 기분이 나쁘지 않았다. 그날의 어슬렁거림이 없었다면, 그날의 세렌디피티가 없었다면, 그 아름다운 가수의 목소리를 듣지 못했을 테니까.




어슬렁어슬렁, 축제를 닮은 여행의 축복

축제가 끝날 무렵 세 번째 세렌디피티가 시작되었다. 사람들은 너도나도 하나가 되어 온갖 노래들을 합창하고, 춤을 추고, 술을 마시며, 모든 슬픔을 잊고 있었다. 나는 술마시는 분위기는 좋아하지만 술은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다. 당연히 나의 잔은 계속 가득 차 있는 상태였는데, 나를 바라보던 한 프랑스인이 ‘왜 술을 안 마시냐’고 물었다. 술을 좋아하지 않지만, 축제는 좋아한다고 했더니, 그가 환하게 웃으며 ‘그 술은 내가 마시겠다’고 했다. 나는 흔쾌히 내 잔에 담긴 와인을 몽땅 따라주었다. 친구는 또 한 번 혀를 끌끌 찼다. 그래도 나는 행복했다. 그 잔에 담긴 술은 나를 행복하게 해주지 못했지만, 우연히 내 곁에 있었던 다른 사람을 행복하게 해주었으니까. 나의 아름다운 어슬렁거림의 페스티발, 그것이 내겐 여행이 선물해주는 눈부신 축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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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여울 작가.

저서로 《마흔에 관하여》《그때 알았더라면 좋았을 것들》 《늘 괜찮다 말하는 당신에게》 등이 있다.
현재 네이버 오디오클립 '당신의 감성을 깨우는 글쓰기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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