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bout travel

반짝반짝,
여행의 매력은 낯설게 바라보기

글 정여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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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전 파리의 거리를 걷다가 내가 좋아하는 작가 발자크 동상을 발견했다. 좋아하는 작가의 동상을, 그것도 아무런 목적 없이 걷다가 우연히 발견했으니 무척 기쁜 마음이었다. 여러 각도에서 사진을 찍고, 하염없이 발자크의 얼굴을 바라보기도 하고, 파리의 곳곳을 관찰하며 소설 속의 인물을 구상했을 그의 인생을 상상해보기도 했다. 내가 이렇게 동상 앞에서 오래 서 있자 현지인들이 흘긋흘긋 나와 발자크 동상을 쳐다보기 시작했다. 빠르게 동상을 지나쳐가기만 했던 사람이 ‘이 동상이 그렇게 중요한 존재였나?’라는 호기심이 담긴 눈빛으로 동상을 바라보기 시작했다. 현지인에게는 평범하기 이를 데 없는 풍경이 여행자에게는 너무도 소중한 풍경, 반짝반짝 빛나는 아름다운 대상으로 탈바꿈하는 순간이었다. 벨기에의 아름다운 도시 겐트에서도 이런 경험이 있었다. 골목길의 담벼락에 붙은 알록달록한 스티커가 너무 귀여워서 열심히 사진을 찍고 있으니, 한 현지인이 다가와 나에게 물었다. “뭐가 그렇게 신기한가요? 이게 아름다운가요?” 나는 활짝 웃으며 “나에겐 정말 아름답게 보인다”고 말했다. 그는 의아한 표정을 지으며 자기 눈에는 그냥 평범한 스티커로 보인다고 이야기했다. 이렇듯 현지인에게는 그저 심상한 배경화면 같은 존재가 여행자에게는 반짝반짝 빛나는 보석 같은 풍경이 될 때가 있다.

여행은 낯익은 풍경을 낯설게 바라보게 만듦으로써 우리 안의 익숙한 생각들과 결별할 수 있는 자유와 해방감을 안겨준다. 그럼으로써 그들의 문화와 우리의 문화 사이의 차이를 성찰해 보며 우리의 삶을 바꿀 수 있는 소중한 힌트를 얻기도 한다. 베를린의 거리를 걸으며 나는 신기한 포스터 더미를 발견했다. 콘서트나 뮤지컬을 광고하는 포스터였는데, 예전의 포스터들을 굳이 떼어 버리지 않고 마치 한 권의 커다란 책처럼 고스란히 ‘포스터 위의 또 다른 포스터’를 붙여나간 꾸러미였다. 포스터를 책장처럼 넘겨 보며 ‘아, 과거에는 이런 공연이 있었구나, 어머, 이 가수도 베를린에 다녀갔네!’하는 생각에 잠겨볼 수 있는 것이었다. 풀이나 테이프로 단단히 붙인 포스터를 억지로 떼어버려야 하는 수고를 절약하고, 사람들도 ‘옛날에는 이런 공연이 있었구나’하는 추억에 잠겨볼 수 있는 것이었다. 그런 포스터 꾸러미들이 도시 곳곳에 흩어져 있었다. 과거의 흔적을 무조건 지워버리기보다 마치 추억의 앨범처럼 고스란히 보존해 놓음으로써 시간의 흐름을 한 올 한 올 되새기게 만드는 것. 그것이 내가 유럽 여행에서 느낀 행복의 뿌리였다.

반짝이는 건 사물이나 장소만이 아니다. 사람이 반짝일 때 여행의 행복은 더욱 빛을 발한다. 마드리드에서 몇 번이나 보고 또 봤던 플라멩코 공연을 아무리 봐도 질리지 않았던 이유는 ‘춤을 추는 사람들의 아름다움’ 때문이었다. 인간의 몸짓이 저토록 아름다울 수 있구나. 노래를 부르고, 춤을 추는 댄서들의 동작 하나하나가 ‘내가 미처 경험하지 못한 생의 반짝임’처럼 느껴졌다. 춤을 추는 사람들만이 느낄 수 있는 생의 황홀경이 거기 있었다. 나는 할 수 없지만 누군가 다른 사람이 할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눈부신 행복을 느낀다. 그렇게 아름다운 춤을 출 수 있는 사람들이 이 세상에 있다는 것만으로도, 우리가 그 아름다운 공연의 관객이 되어 예술의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여행자의 행복은 무한대로 부풀어 오른다.

베를린 필하모닉의 공연을 직접 본 날에도 마음속에서 거대한 파도가 출렁이는 느낌이었다. 내 안에 이런 황홀경이 자리할 수 있구나, 내 안에 이런 반짝이는 잔물결이 일어날 수 있구나. 뜨거운 감동 때문에 그날 밤 잠을 제대로 이루지 못했다. 잠 못 이루는 설렘까지도 기쁘고 좋은 일처럼 느껴졌다. 공연만큼이나 아름다웠던 것은 지휘자가 연주자를 배려하는 마음이었다. 그날 한 바이올린 연주자가 정년퇴임을 맡는 날이었는데, 지휘자는 소담스러운 꽃다발을 준비하여 이제 마지막 연주에 임하는 백발의 바이올리니스트에게 선물했다. 당신이 있었기에 우리 오케스트라는 행복했다고 말하며. 바로 그런 순간이 ‘사람이 반짝이는 순간’이며 여행의 아름다움이 생의 한 페이지를 더욱 눈부시게 장식하는 순간이다.

뉴욕에서도 그런 일이 일어났다. 걸어서 링컨 센터를 지나는데 어디선가 너무도 감미로운 첼로와 바이올린의 소리가 들렸다. 누가 이렇게 훌륭한 연주를, 그것도 길거리에서 할 수 있나 싶어 뒤를 돌아보았더니, 링컨 센터에서 당일 저녁 공연 예정인 오케스트라 연주자들이 일종의 짧은 퍼포먼스를 함으로써 관객들을 끌어들이고 있었다. 공연의 하이라이트를 길거리에서 무료로 보여줌으로써 관객들을 불러 모으는 것이었다. 게다가 그들의 현악사중주의 멜로디에 맞추어 발레리나들이 무대 의상을 그대로 입고 멋진 공연을 펼치고 있었다. 어떤 광고보다 더 직접적인 울림이었다. 연주가 끝나고 나는 용기를 내어 바이올리니스트에게 물었다. 이 공연의 풀버전은 언제 어디서 볼 수 있냐고. 바이올리니스트는 환하게 웃으며 말했다. 오늘밤 링컨 센터에서 이 공연의 풀버전을 볼 수 있다고. 나는 ‘정말 감사하다’고 말하고 곧바로 표를 끊었다. 이런 순간은 정말 계획성이 부족한 나에게 반짝이는 설렘의 순간이다. 충동적이고도 우연하게, 내가 정말 좋아하는 무언가를 만날 수 있는 기회를 찾아, 나는 끊임없이 여행을 떠나고 싶어진다.

작가 커트 보네커트는 여행을 향한 반짝이는 설렘을 이렇게 표현한 적이 있다. “뜬금없는 여행 계획은 신이 선사하는 무용 강습이다.” 정말 멋진 깨달음이다. 살아가다 보면 ‘늘 걷는 걸음걸이’, ‘늘 살아가는 일상의 리듬’만으로는 진정한 나 자신이 될 수 없다는 깨달음을 얻는다. 규칙적이고 안정적인 삶도 좋지만, 그것만으로는 ‘내 안의 또 다른 나’가 만족할 수 없는 순간이 있다. 집과 직장을 오가는 일상의 발걸음이 아닌, 신이 선사한 뜻밖의 무용 강습처럼 반짝이는 영감이 필요한 순간. 그럴 때가 바로 일상의 수레바퀴를 잠시 멈추고 반짝이는 여행의 설렘을 찾아 떠나고 싶어지는 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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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여울 작가.

저서로 《마흔에 관하여》《그때 알았더라면 좋았을 것들》 《늘 괜찮다 말하는 당신에게》 등이 있다.
현재 네이버 오디오클립 '당신의 감성을 깨우는 글쓰기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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