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bout travel

달그락달그락,
나를 찾아가는 여정

글 정여울



여행을 하다보면 그 나라의 아름다운 풍경이나 화려한 랜드마크에도 마음을 빼앗기지만, 그 지방 사람들의 아주 작은 일상의 모습들에 감동을 받기도 한다. 얼마 전에는 독자들과 함께 ‘빈센트 반 고흐와 함께하는 유럽 미술 기행’을 떠났다가 언제 어디서나 다정하게 미소 짓는 프랑스 사람들의 친절함에 다시금 감동을 받았다. 파리의 기차역에서 기차 도착 시간을 살펴보며 두리번거리고 있는데, 한 할아버지가 나를 보고 손을 흔들었다. 나도 반갑게 손을 흔들고 미소를 지었더니, 일행 중 한 분이 나에게 이렇게 말했다. “혹시 저분을 아세요?” “하하, 아니요. 방금 처음 본 분이에요. 할아버지가 저에게 반갑게 인사하시길래, 저도 반갑게 인사했지요.” 할아버지의 미소 속에는 무엇이 들어 있었을까. 그것은 오늘 처음 본 사람, 그것도 머나먼 낯선 나라에서 프랑스까지 찾아온 이방인을 향한 따스한 환대가 들어 있었다. 나는 그 따사로운 환대의 미소를 단번에 알아보았고, 우리 두 사람은 그 순간 마치 세상에서 가장 친한 친구처럼, 오래전부터 서로를 알고 있는 것처럼 반갑게 손을 흔들며 미소를 지을 수 있었던 것이다.

나는 이렇게 낯선 여행지에서 아주 사소한 일상의 달그락거림이 눈부시게 빛나는 순간을 사랑한다. 때로는 꿈만 같은 여행지를 향했던 엄청난 기대가 와장창 무너질 때도 있지만, 조금만 시간이 지나면 여행의 아름다운 시간들만 또렷하게 기억에 남고 힘들었던 시간은 놀라운 속도로 잊힌다. 말이 통하지 않다보니 이해할 수 없는 일들도 많지만, 잠시 스치는 여행자의 시간을 더욱 아름답게 하는 것은 이해할 수 없는 것들을 마침내 이해할 수 있게 되는 기쁨이다. 유럽여행을 하다보면 카페나 식당에서 주문을 기다리는 시간이 너무 길어 당황스러울 때가 있었다. 한국에서는 손님이 ‘여기요!’하고 부르거나, 손님이 먼저 이야기하기도 전에 종업원이 먼저 주문을 받아주지만, 유럽에서는 누군가 주문을 받으러 오기까지 한참 기다리는 일이 다반사였다. 유럽에 가기 전에 워낙 ‘유럽에서는 인내심이 필요하다’는 이야기를 많이 들었기 때문에 처음에는 그냥 기다렸다. 유럽의 기다림에는 기묘한 중독성이 있었다. 기다림에 익숙해진 나는 어느덧 버스터미널에서 버스를 기다리다가 벤치에서 선잠에 들기도 하고, 연착된 기차 안에서 책을 읽고 밀린 원고도 쓰며 기다림의 시간을 즐기는 경지에 이르렀다. 유럽식 기다림에 길들어버린 나는 한국에 오면 놀라운 일처리 속도에 깜짝 놀라 새삼 ‘한국식 빨리빨리’의 세계관이 지닌 엄청난 위력에 감탄하기도 했다.
그런데 가족이 아닌 다른 사람들과 여행을 하기 시작한 뒤 새로운 질문을 받게 되었다. 혹시 유럽 사람들의 주문 속도가 유난히 느린 것은 동양인을 차별해서가 아니냐는 것이었다. 난 ‘그럴 리가 없다’고 대답했지만, 의심의 눈길이 시작되자 나도 모르게 ‘혹시나’ 하는 마음이 되었다. 특히 톨레랑스를 일상화한 파리 사람들이 절대 그럴 리가 없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가끔은 나도 기다림에 지칠 때가 있었다. 10분이나 20분 정도 기다리는 것은 괜찮았지만, 이미 배가 고픈 상태에서 식당에 들어가는 경우가 대부분이라 ‘혹시 이 사람들이 아시아인을 차별하는 것이 아닌가’하는 피해 의식이 들 때도 있었다. 그런데 이번 여행에서 프랑스에서 30년 이상 살고 계신 유럽여행 가이드를 만나면서 이 의혹이 해소되었다. 프랑스인들은 인종차별을 싫어하며, 혹시나 인종차별을 하는 사람이 있다면 사람을 피부색으로 판별하는 사람 스스로가 그런 마음가짐을 부끄러워해야 할 일이라는 것이다. 프랑스인들은 손님이 앉자마자 메뉴를 가져가면 너무 다급해 보일까봐 천천히 손님들끼리 이야기를 나눌 시간, 풍경을 즐길 시간을 준 뒤 느긋하게 주문받는 것을 좋아한다고 한다. 손님이 앉자마자 메뉴판부터 내미는 것이 오히려 예의에 어긋난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한국인들의 엄청난 서비스 정신과 놀라운 속도에 익숙한 우리로서는 상상도 하지 못할 세계관이었지만, 그 이야기를 듣고 나니 그 오랜 기다림이 모두 한꺼번에 이해가 되었다.
이렇듯 여행을 오래 하다 보면 ‘이 나라 사람들은 왜 그럴까’하는 의문이 생기기도 하고, ‘우리나라 사람들과의 차이’도 생각하게 된다. 단지 멋진 풍경을 보고 감탄하고 ‘인증샷’을 찍는 것에 만족하는 여행이 아니라, 그 나라 사람들의 생각 속으로 깊이 들어가는 여행, 그들의 일상 깊은 곳으로 들어가 조금씩 친밀감을 느끼는 여행이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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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가끔 유럽 사람들의 한없는 여유로움에 깊은 부러움을 느끼곤 한다. 그들은 내가 아름다운 풍경에 넋을 잃고 사진을 찍을 때마다 자신들이 가던 길을 멈추어주었다. 나의 카메라 앵글에 자신들의 얼굴이나 손발이 들어갈까 봐, 갈 길을 멈추고 내가 사진을 다 찍기를 기다려주는 것이다. 그럴 때마다 나는 미안한 마음이 들어서 ‘먼저 가시라’고, ‘나는 괜찮다’고 이야기를 하지만, 그럴 때마다 마치 약속이라도 한 듯 이 그들은 ‘먼저 사진부터 찍으라’고 손사래를 친다. 자신이 걸어가던 길보다 낯선 이방인이 사진을 찍는 일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그들의 따스한 배려가 가슴을 울리는 순간이었다. 빨리빨리 모든 것을 처리하는 한국인의 생활방식에 익숙해진 나는 가끔 그들의 놀라운 여유로움과 아무런 욕심 없는 배려에 가슴이 뭉클해지곤 한다. 그들의 일상이 ‘달그락달그락’, 적당한 덜컹거림과 어여쁜 기다림 속에 놓여 있다면, 나의 일상은 ‘와장창’ 모든 것이 한꺼번에 무너져 내릴까봐 전전긍긍하는 엄청난 초조함 속에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닐까. 나는 불안함과 초조함을 공기처럼 호흡하고 살아가며 ‘아직 멀었어’, ‘더 잘 할 수 있었는데’라는 식의 자신을 향한 채찍질을 멈추지 못하며 살아온 것은 아닌지. 나는 조금 더 느긋하게, 아무런 욕심 없이, 천천히 길을 걷는 연습부터 다시 시작하려 한다. 신호등 색깔이 곧 바뀌려 하는데 ‘아, 아직 5초나 남았어!’라고 생각하며 미친 듯이 뛰기보다는, ‘신호등도 곧 바뀌는 마당에, 이제 한 템포 쉬어가자’라는 마음으로 다음 신호등을 기다리는 마음가짐으로 살아가고 싶다. 일상이 와르르 무너질까봐 두려워하는 마음보다는 내가 누릴 수 있는 이 소소한 일상의 기쁨을, 사탕을 천천히 녹여먹음으로써 더욱 그 달콤함을 오래오래 음미하는 마음으로, 더 천천히, 더 느긋하게 누려보고 싶다. 우리의 일상이 달그락달그락 굴러가는 소리, 그 소리 속에 우리 마음을 그린 영혼의 풍경화가 깃들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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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나라 사람들의 생각 속으로 깊이 들어가는 여행, 

그들의 일상 깊은 곳으로 들어가 조금씩 친밀감을 느끼는 여행이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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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여울 작가.

저서로 《마흔에 관하여》《그때 알았더라면 좋았을 것들》 《늘 괜찮다 말하는 당신에게》 등이 있다.
현재 네이버 오디오클립 '당신의 감성을 깨우는 글쓰기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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