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oul Trip

우리 또 여행 갈래?

글 이현정(독자의 글)






“우리 여행 갈래?”


20년 전 어느 봄날, 친구의 갑작스런 전화 한 통으로 내 생애 첫 해외여행이 시작되었다. 여행을 가자는 제의를 받고, 평소처럼 가까운 어딘가로 가겠지 싶어 “그래!, 어디로?” 했는데, 돌아온 대답은 홍콩이었다. 제주도도 가보지 못한, 그야말로 비행기 무경험자였던 나에게 홍콩이라니! 이런 마음 속 놀라움과 망설임을 뒤로하고, “좋아!”라는 말이 먼저 튀어나왔던 건 ‘너와 함께라면 어디든 좋아!’싶은 마음이 컸기 때문이었다.

어쨌든 안부를 묻듯 가볍게 시작된 통화가 끝나고 정확히 3주 후, 우리는 김포공항으로 향했다. 대부분의 준비는 꼼꼼한 성격의 친구 몫이었고, 조금 일찍 직장생활을 시작했던 나는 경비 지원에 힘을 보태며 그렇게 다소 충동적인 첫 해외여행을 시작했다. 여권을 준비하고, 캐리어를 사고, 짐을 꾸리고, 공항으로 향하던 모든 순간들이 오랜 시간이 지난 지금까지도 기억 속에 선명하다. 비행기가 땅을 박차고 오를 때의 긴장과 처음 접하던 기내식의 설렘 역시 잊혀지지 않는다. 당시엔 세계적 수준이라고 하던 홍콩공항의 이국적 느낌이 인상적이었다.

그때 영국 식민지 역사를 막 끝낸 홍콩은 중국과 유럽을 오묘하게 조합한 느낌이었고, 수많은 현대식 고층 건물이 화려하게 빛나는 반면 서민 아파트들은 마치 낡은 닭장처럼 보여 대비되는 도시의 모습이 아이러니하기도 했다. 주말이면 각 가정에서 가사도우미로 일하는 동남아시아 여성들이 공원과 길거리를 가득 메운 모습도 생소했고, 한국에 없던 2층 버스와 트램도 색다른 경험이었다. 침사추이, 센트럴 거리, 빅토리아 피크, 몽콕 야시장, 웡타이신 사원 등 주요 관광지들도 빠뜨리지 않으려 구룡섬과 홍콩섬을 몇 차례나 오가며 참 바쁘게 움직였다. 그런 게 바로 ‘젊어서 하는 고생 사서도 한다’라는 말인가 싶기도 하다.

또 처음 보는 중국 요리와 화려한 딤섬에 이성을 잃고 폭식을 하는 바람에 체기를 달고 일정을 소화하느라 얼마나 고생했던가! 최근은 어떤지 모르겠으나 당시 모조품의 천국이라 불리는 홍콩을 직접 느껴보겠다며 쇼핑몰을 방문해 지름신과 사투를 벌였지만 명품 무늬가 그럴듯해 보였던 셔츠를 결국 포기하지 못해 결국 지름신의 싸움에서 패배했던 순간도 이젠 첫 해외여행이 남긴 영광의 상처가 되었다. 지금 생각하면 낯선 이국땅에서 서툰 영어와 우스꽝스런 몸짓으로 두 청춘이 참 용감하게 돌아다녔다는 생각이 든다. 아마도 우리 둘이 함께 했기에 가능한 일이었고, 또 그래서 평생 잊지 못할 추억이 된 것이겠지. 경제적, 언어적, 시간적으로 모든 게 다 여유로워진 지금이지만 무모했던 열정과 젊음이 그 때와는 다르고, 무엇보다 그 시절을 함께 추억하며 재도전할 친구가 이제는 곁에 없다. 몇 해 전 출산 후유증으로 사랑하는 이들과 안타까운 이별을 한 친구는 이제 그리움이란 이름의 별이 되었다. 슬픔에도 세월의 굳은살이 박이는지 처음엔 차마 보기 힘들었던 그때의 사진들을 이젠 제법 덤덤하게 보곤 한다. 홍콩에서 해맑게 웃고 있는 친구와 나의 모습이 그립기도 하고 아프기도 하다. 그러나 사랑했던 마음과 함께했던 추억이 가슴 속에 남아있는 동안 우리는 여전히 친구다. 언젠가 다시 만나게 되는 다음 생이 있다면 그 땐 내가 먼저 “우리 여행 갈래?”라는 말을 안부처럼 가볍게 건네고 싶다.

‘우리 젊은 날, 너와 함께 한 홍콩여행은 참 좋았어! 나는 그 후로 많은 나라를 다녀봤지만 여전히 내 인생 최고의 여행은 너와 함께 한 홍콩여행이야. 좋은 추억을 남겨줘서 고맙고, 언제나 사랑해. 우리 또 다시 만나자. 그 때 우리 또 여행 갈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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