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bout Travel

소설가 김별아 Essay <2편>

황홀, 아름다움을 겪다각의 결을만지는 일









겪은 만큼 보인다는 것

인간의 뇌와 행동의 메커니즘을 탐구하는 뇌 과학책에서 흥미로운 이야기를 읽었다.

만약 태어날 때부터 시력을 잃었던 시각장애인이 갑자기 눈을 뜨게 된다면, 우리가 상상하는 것처럼 세상의 아름다운 풍경을 접하고 감격할까?”

질문에 대한 정답은 아니오!” 처음 눈을 뜬 시각장애인은 신생아와 같은 상태이기 때문에 비장애인과 물리적으로 동일한 파장과 세기를 가진 빛을 보면서도 그것이 무엇인지 전혀 이해할 수 없다고 한다. 다만 시력을 얻었기에 볼 뿐 추함도 아름다움도 느끼지 못한다. 그렇다면 다채로운 세상을 보는 감각의 비밀은 무얼까 하니, 바로 경험이라는 것이다. ‘무엇을 보느냐는 바로 무엇을 경험하느냐에 따라 달라진다는 뇌 과학의 결론은 여행의 다른 표현 중 하나가 관광(觀光, Sightseeing)이라는 사실을 떠올리게 한다. 여행에서 보는 일만큼 큰 비중을 차지하는 것이 없고, 대부분의 사람들은 새로운 것들을 보기 위해 여행을 떠난다. 우리는 겪으며 본다. 겪어서야 비로소 아름다움을 느낄 만큼 볼 수 있다.







여행은 곧 수많은 빛깔

지난 여행을 떠올릴 때 가장 먼저 뇌리에 떠오르는 것은 어떤 장면이다. 풍경이거나 인물이거나 사건이거나 물건이거나 눈을 사로잡았던 것들이 기억화로 되살아난다. 지구에서 가장 가까운 거리에 있는 태양계의 중심 항성은 하나뿐이지만 여행지의 햇빛은 왠지 다르다. 자유, 그리고 일상을 벗어난 해방감을 투과하기 때문일까?

사막과 마른 소 떼와 사람의 숲을 헤매던 인도 여행은 아라비아해에 지던 붉은 노을과 갠지스강의 탁한 물결마저 가리던 꽃 등잔의 일렁임으로 기억된다. 쌀쌀한 초봄에 찾은 거제도 지심도는 푸르도록 짙은 초록과 대비되는 선홍의 동백꽃으로 돋을새김되어 있다. 모스크바의 기억은 모두 하얗다. 대평원을 지나는 내내 보았던 길가의 자작나무들 때문이다. 대관령 선자령에서 만난 눈처럼 티 없이 하얀 눈과 그때의 하늘처럼 시리도록 푸른 하늘이 다시 있을까? 오르세 미술관의 <오베르 쉬르 우아즈의 성당> 앞에서 몇 시간이 흘러도 떠나지 못했던 순간은 파리 여행의 정수이자 전부나 다름없다.

깊고 단순한 코발트블루 하늘과 성당 건물이 대비를 일으켜 이 성당은 보랏빛을 살짝 띠는 것 같다. 그리고 스테인드글라스 창문은 군청색으로 점을 찍은 듯 보이지. 실제로 보라색을 섞어서 칠한 성당의 지붕에는 부분적으로 오렌지색을 섞어 색의 대비가 강렬하게 했다. 또 앞에는 초록색 잔디와 꽃들을 그리고 햇빛을 받아서 장미 색깔로 반짝이는 모레도 표현했단다.”

고흐가 여동생 빌에게 편지로 전한 그대로, 도록으로는 도저히 표현될 수 없는 색과 빛이 눈앞에 펼쳐져 있었다. 그토록 넘치는 아름다움에 나는 그만 왈칵 울고 싶어졌다. 엄청나게 새롭고 기발하고 장대한 무언가를 보았기 때문만은 아니다. 일상에서 잊고 지내던 삶이 그 순간 아름다움을 통해 생생하게 일깨워지기 때문이다. 그곳에 아름다움이 있고, 그 아름다움을 볼 수 있기에 나는 살아있다!






뇌리에 남는 황홀한 기억

눈이 보이면, 보라. 볼 수 있으면, 관찰하라.” 포르투갈 작가 주제 사라마구의 대표작 눈먼 자들의 도시훈계의 책에서 인용했다는 이 말로 시작된다. 영화로도 만들어진 유명한 소설은 어느 날 갑자기 눈이 머는 전염병이 도는 세상을 그린 무서운 판타지다. 빛과 색이 모두 사라진 세상에서 사람들은 암흑을 더듬으며 눈을 뜨고도 보지 못했던 것들, 인간의 본능과 욕망을 비로소 본다. 이처럼 보다는 개념은 눈으로 대상의 존재나 형태적 특징을 안다는 단순함을 넘어, 대상을 즐기거나 감상함은 물론 숨은 의미를 파악하는 것까지 포함한다.

보는 일은 세상을 이해하는 일차적인 방편이다. 그러하기에 시각, 청각, 후각, 미각, 촉각의 다섯 가지 감각 가운데 시각은 뇌의 가장 큰 기능을 차지하며 가장 많은 역할을 한다. 우리는 매일 잠에서 깨어나는 순간부터 무수한 것들을 본다. 하지만 익숙한 풍경은 더 이상 경험되지 않고 기계적으로 반복되기에 우리는 겉으로 보기에는 눈이 멀쩡하지만 앞을 보지 못하는 청맹과니나 다름없이 산다. 삶의 배경이 되는 일상 속에서 무엇도 진실을 캐낼 수 있을 만큼 관찰하지 못한 채.

황홀, 그 간질간질한 단어의 말뜻은 눈부셔 어릿어릿할 정도로 찬란한 무언가에 마음이나 시선이 혹해 달뜨는 것이다. 황홀은 곧 삶을 깨닫는 감각이다. 삶의 아름다움에 홀려 아찔해지는 기분이다. 언제나 가슴이 뛰는 것이 병이라면 시도 때도 없이 아찔해지는 것도 병증일 수밖에 없겠지만, 실로 지리멸렬한 삶에서 황홀의 순간은 그다지 많지 않다. 보석이 흔하다면 돌멩이에 불과하듯 황홀은 흔치 않기에 소중하다. 황홀의 장면을 여러 장 품고 가끔 꺼내어 들여다볼 수 있는 사람이야말로 영혼의 부자다. 황홀한 기억의 보석을 캐기 위해, 아름다움을 겪기 위해 다시 떠날지어다.

 






소설가 김별아

1969년 강원도 강릉에서 태어나 연세대학교 국어국문학과를 졸업한 뒤 1993년 『실천문학』에 「닫힌 문 밖의 바람소리」를 발표하며 등단했다. 제1회 세계문학상을 수상한 『미실』을 비롯하여 장편소설 『논개』, 『백범』, 『열애』, 『가미가제 독고다이』, 『채홍』, 『불의 꽃』, 『어우동, 사랑으로 죽다』, 『탄실』 등과 산문집 『톨스토이처럼 죽고 싶다』, 『이 또한 지나가리라!』, 『괜찮다, 우리는 꽃필 수 있다』, 『삶은 홀수다』, 『스무 살 아들에게』, 『빛나는 말 가만한 생각』 등을 펴냈다.


shared kakaostory shared facebook shared twitter
별점주기
  • score 1 Star
  • score 2 Star
  • score 3 Star
  • score 4 Star
  • score 5 Star
SNS제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