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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가 김별아 Essay <3편>

그 기억을 만지고 싶다







           


생의 마지막까지 깨어있는 감각
눈물을 대신한 의식이었다. 시인 J는 아버지를 임종하며 막 숨을 거둔 아버지의 귀에 대고 《티벳 사자의 서》를 읽어드렸다고 했다. 책은 티베트 불교에서 죽음과 환생 사이의 중간 단계에 머무르는 사자(死者)를 위해 읊는 기도문으로, 죽음의 이해를 통해 삶을 깨닫게 하는 신비의 경전이다. 종교 문제와 별개로 시인 J가 지상을 떠나는 아버지와 끝까지 대화를 나눈 것은 감각에 대한 믿음 때문이었다. 임사 체험을 경험한 사람들이 공통으로 증언하는 바대로라면, 사람으로서 느낄 수 있는 마지막 감각이 청각이라는 것!
그런가 하면 오랫동안 한국을 떠나 다른 언어 문화권에서 살았던 친구 K가 고백하길, ‘모국’에 돌아왔다는 사실을 가장 생생하게 느낀 순간은 ‘모국어의 속삭임’이 들렸던 그때라고 한다. 이방의 언어 속에서 일하고 공부하고 일상 대화를 나누고 살며 이제는 꿈마저 그 나라 언어로 꾸는 지경에 이르렀건만, 사람들이 머리를 맞대고 목소리를 낮춰 저희끼리 속살거리는 소리까지는 듣지 못했다. 청각의 비밀은 다른 어떤 감각보다 깊숙하고 은근하다.


듣고 싶어 하는 것만 듣는 ‘청각뇌’
무언가에 익숙해지고 길들여지면 그 특별함을 잊게 마련이다. 기실 청각은 의사소통 과정의 매개로서 듣고 말하는 기능을 넘어선다. 의사이자 일본 청각카운슬러협회 대표인 시노하라 요시토시의 책 《청각뇌》에 따르면, 청각을 살피는 가운데 질병과 스트레스를 알 수 있으며 동시에 청각을 통해 질병을 치유할 수 있다고 한다. 귀는 마음과 이어져 있으며 뇌가 사람의 청각을 만들기 때문이다. 중요하고도 무서운 일이 아닐 수 없다. 뇌는 귀를 통해서 들어온 소리 중 필요하다고 생각되는 소리만 취사선택하고 인식한다. 귀로 듣는 것이 아니라 뇌로 소리를 듣는 것이다. 들리는 대로 듣는 것 같지만, 듣고파 하는 것만 듣는다.
도시는 너무 복잡하고 시끄러워서 도시인들은 일상적으로 소음에 시달린다. 그 소음에서 벗어나기 위해 더 큰 소리로 도망치기도 한다. 언젠가부터 외출하기 위해 버스나 지하철을 타면 이어폰부터 귀에 꽂는다. 열린 귀를 닫고 틀어막는다는 건 대화하고 싶지 않다, 소통하고 싶지 않다, 관계 맺고 싶지 않다는 거부의 몸짓이다. 우리는 그렇게 타인을 차단하면서 스스로 고립돼 간다. 요시토시의 말대로 ‘듣지 않는 귀’가 결국 ‘들을 수 없는 귀’가 돼버리는 것이다.







낯선 세상의 울림을 받아들이는 청각

청각은 아주 오래된 감각이다. 과학자들에 의하면 귀는 진화의 가장 마지막 과정에서 완성됐다고 한다. 포식자의 접근을 알려줬던 원시 양서류의 귀에서 음악을 즐기고 사랑하는 사람의 속삭임에 전율하는 인간의 귀가 되기까지 3억 년 동안의 기다림이 있었다. 낯선 환경에서 감각을 모두 열어놓는 건 생존을 위해 발달한 본능이다. 공격과 위험에 대비해 귀 기울여 듣고, 자세히 보고, 예민하게 맛보며 조심스레 만진다. 그렇다면 우리의 감각이 무뎌진 것은 우리가 너무도 안전한 환경에서 무사안일하게 살아가기 때문일까?여행지의 아침을 깨우는 것은 다름 아닌 ‘소리’다. 여행의 피로로 고단한 잠에 빠져 비몽사몽 꿈길을 헤매다가 문득 낯선 새 울음소리나 경적 같은 일상의 소음에 눈을 뜬다. 설령 같은 언어권이라 할지라도 미묘하게 사람들의 말투와 웃음소리, 발소리까지 다르다. 우리의 뇌가 우리의 몸이 여행지에 있음을 일깨우며 세상의 모든 소리를 새롭게 받아들이도록 추썩이는 것이다. 새로운 무언가를 듣는 건 아니다. 혹사당하는 채로 무시됐던 청각을 일깨우는 것이다. 소리는 무게도 없고 보이지도 않는 공기의 진동일 뿐이기에, 청각이 자극하는 것은 흔들리며 울리는 삶 그 자체다.





여행으로 이끄는 소리의 마력
“나는 여름이 되어 그 거리로 돌아가면, 늘 그녀와 걷던 길을 걷고, 창고의 돌계단에 앉아 혼자서 바다를 바라본다. 정작 울고 싶을 때는 오히려 눈물이 나오지 않는다. 그런 법이다.”
언제나 여행하는 작가, 무라카미 하루키의 첫 장편소설 제목은 《바람의 노래를 들어라》이다. 태어난 순간부터 숨을 거둔 직후까지 무언가를 듣지만, 귀와 마음을 함께 기울이지 않으면 울고 싶을 때 눈물이 나지 않는 것처럼 끝내는 들을 수 없는 귀를 가진 사람이 돼버릴 터다.
여행지의 바람, 그 머물지 않는 소리가 그리워질 때면 소리 풍경의 생태학이라는 독보적 영역을 개척한 미국의 음악가 버니 크라우스가 《자연의 노래를 들어라》에서 소개한 웹사이트(www.thegreatanimalorchestra.com)에 들어가 ‘위대한 살아있음의 소리’를 듣는다.
땅과 빙하가 움직이고, 눈과 비가 내리고, 바람이 불고, 물결이 치고, 새와 늑대와 코끼리가 운다. 크라우스가 녹음한 세상의 갖가지 소리를 듣노라면 청각이야말로 모든 것을 펼쳐 보여주며 수다스럽게 말을 걸어오는 감각이 아닐까 싶다. 이윽고 그 소리를 따라 어디로든 가고 싶어진다. 이곳이 아닌 다른 어느 곳, 시인 J의 아버지와 친구 K가 들은 비밀의 발원지, 세상의 처음이자 마지막인 그곳으로.






소설가 김별아

1969년 강원도 강릉에서 태어나 연세대학교 국어국문학과를 졸업한 뒤 1993년 실천문학에 『닫힌 문 밖의 바람소리』를 발표하며 등단했다. 제1회 세계문학상을 수상한 『미실』을 비롯하여 장편소설 『논개』, 『백범』, 『열애』, 『가미가제 독고다이』, 『채홍』, 『불의 꽃』, 『어우동, 사랑으로 죽다』, 『탄실』 등과 산문집 『톨스토이처럼 죽고 싶다』, 『이 또한 지나가리라!』, 『괜찮다, 우리는 꽃필 수 있다』, 『삶은 홀수다』, 『스무 살 아들에게』, 『빛나는 말 가만한 생각』 등을 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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