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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가 김별아 Essay <5편>

달콤하고 쌉쌀한 추억의 맛








           

문명이 일깨운 즐거운 감각, 미각

인간은 먹는다. 고로 존재한다. 생각하기 이전에, 사회화를 가능케 하는 생각이라는 고기능을 발휘하기 전에 일단 먹는 행위를 통해 육체에 영양을 공급해줘야 존재를 유지할 수 있다. 다만 그 잠언이 따로 없는 것은 굳이 철학이라기에 너무도 당연하고 명확한 사실이자 본질이기 때문이리라.  원시인들에게도 채식보다 육식을 좋아한다든가 고기보다 생선을 더 좋아하는 등의 취향이 있었을까? 아마도 먹는 일이 생존 본능에 머물던 시절에는 미각이 그다지 중요한 감각이 아니었을 것이다. 시장이 반찬이고, 시장하면 밥그릇을 통째로 삼킨댔다. 허기진 배를 채우고 나서 여유로워진 후에야 무엇을 더 좋아하고 덜 좋아하는가, 나아가 싫어하는가에 대한 의식이 일깨워지기 마련이다. 그래서 미식은 문명의 증거이자 쾌락, 낙관의 다른 이름일 수밖에 없다. 본업인 법관보다 미식가로 유명한 18세기 프랑스인 브리야 사바랭은 잘 먹고 즐겨 먹었던 사람이기도 하지만 무엇보다 미각을 통한 인간의 욕망을 잘 이해했던 사람이다. “네가 무엇을 먹는가를 말하라. 그러면 내가 너의 사람됨을 말하리라!”는 말이 가장 유명하지만 그 외에도 수많은 명언이 있다. 이를테면 “한 나라의 운명은 그 나라가 식생활을 영위하는 방식에 달려 있다”라든가, “식사의 쾌락은 나이와 조건과 나라를 불문하고 나날이 경험된다. 그것은 다른 어떠한 쾌락과도 어우러질 수 있으며, 이 모든 쾌락이 사라진 후에도 마지막까지 남아 우리에게 위안을 준다” 같은 것이다. 여행의 즐거움 가운데 큰 것 중 하나가 바로 새로운 미각을 자극하는 즐거움이라는 데 대해 확인 도장을 꽝꽝 찍어주는 말이 아닐 수 없다.








식탁을 벗어난 새로운 맛의 탐험

몇 해 전부터 ‘먹(는)방(송)’이 유행하기 시작할 때 영국 잡지 <이코노미스트>에서는 한국에서 먹방(Mukbang:한국어 병음 그대로 글로벌한 고유명사가 되었다!)이 인기 있는 이유에 대해 장기 경제 침체로 한국인들에게 널리 깔린 불안감과 불행 때문이라고 해석했다. ‘먹방’에도 트렌드가 있어서 초기에는 식이 조절을 일상으로 하는 몸매 좋은 연예인들이 주로 등장했다. 아무리 봐도 그 한 끼를 위해 며칠을 굶은 듯한 모습과 대본에 충실한 맛 표현이 지리멸렬했다. 그러다 대식가들이 푸짐하게 양껏 먹는 프로그램이 나와 다이어트에 지친 시청자들을 대리만족시키기 시작했고 끝내는 미각의 표현에 오감을 총동원하는 먹방의 신흥 강자가 등장했는데, 바로 개그우먼 이영자 씨다. ‘아이러니한 아삭함’이 느껴지는 ‘김치만두계의 장미’, ‘말초신경을 다 깨우는’ 황태, ‘물고기들이 입에서 막 돌아다니는’ 어묵 등은 ‘자유를 주는 맛’이자 ‘봄 들어간다’는 식으로 계절을 일깨우는 감각이다. 바야흐로 맛을 통해 상상하고 세계를 주유하는 새로운 경지다.‘맛집 기행’이라든가 ‘푸드 트립’이라는 말이 낯설지 않다. 이제 먹방은 혼자만의 방에서 벗어나 여행 프로그램과 결합하는 경지에 이르렀다. 실로 여행은 새로운 맛의 탐험이라 할 만하다. 혀끝을 통해 몸으로 확인하는 새로운 세계다. 배고픈 여행은 남의 동네를 기웃거리며 이방인으로 떠돌다 온 듯한 아쉬움을 준다. 낯선 음식이 입맛에 맞지 않는다며 바리바리 식재료를 싸 짊어지고 간다든가 한식당만 찾아다니는 것도 안타까운 편향이다. 그들의 식탁에 앉아 그들의 음식을 맛보지 않고서야 그 세계에 사는 사람들의 삶을 일부만 구경한 것에 불과하다. 그야말로 금강산도 식후경이다!





먹는다, 고로 존재한다

여행자로서 생활인들의 일상을 공유할 수 없을지라도 그들의 음식을 먹으며 삶의 일부를 체험한다. 무엇보다 맛의 신비는 그것이 단순히 미뢰에 의한 미각의 자극만이 아니라는 데 있다. 음식은 모양과 색깔로 시각을 자극하고, 풍기는 냄새와 향료로 후각을 자극하며, 식감으로 촉각을 자극하고 마침내 미각으로 느껴진다. 또한 음식을 먹는다는 것은 혀끝의 일만이 아닌 식당의 문을 열고 들어가 식탁에 앉는 순간부터 계산을 치르고 나올 때까지의 전 과정과 연관된다. 그래서 ‘맛있다’는 것은 상상력과 기분과 분위기가 모두 결합된 특별한 감각이라 할 수 있다. 대단한 미식가는 아니지만 돌이키면 떠오르는 맛들이 있다. 하노이 뒷골목의 쌀국수 맛은 작고 위태로운 간이 의자에서 낯선 사람들과 합석한 채로 먹었기에 더 진하고 담백했다. 네팔 포카라의 티베트 식당에서 마신 좁쌀 술은 우연히 만난 동행에게서 선물로 받은 알록달록한 만다라 손수건 때문에 달고 뜨거웠다. 거제도의 도다리쑥국은 그해 봄나들이에 함께했던 고운 벗들의 웃음소리로 향기롭고, 구례 쌍계사 앞에서 마신 말차는 처음 만난 손님에게 흔흔히 옛사랑 이야기를 들려주던 주인장의 눈자위에 언뜻번뜻하던 물기처럼 맑았다. 우리는 먹는다. 고로 존재한다. 우리가 세상을 떠돌며 먹은 음식들이 우리가 된다. 혀를 기쁘게 하고, 배를 불리고, 그리고 마침내 추억이 된다.      






소설가 김별아

1969년 강원도 강릉에서 태어나 연세대학교 국어국문학과를 졸업한 뒤 1993년 실천문학에 『닫힌 문 밖의 바람소리』를 발표하며 등단했다. 제1회 세계문학상을 수상한 『미실』을 비롯하여 장편소설 『논개』, 『백범』, 『열애』, 『가미가제 독고다이』, 『채홍』, 『불의 꽃』, 『어우동, 사랑으로 죽다』, 『탄실』 등과 산문집 『톨스토이처럼 죽고 싶다』, 『이 또한 지나가리라!』, 『괜찮다, 우리는 꽃필 수 있다』, 『삶은 홀수다』, 『스무 살 아들에게』, 『빛나는 말 가만한 생각』 등을 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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