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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가 김별아 Essay <5편>

코끝에 맴도는 그 향기








           

숨을 쉬는 한 벗어날 수 없는 감각

‘위대한 것, 끔찍한 것, 아름다운 것 앞에서도 눈을 감을 수는 있다. 달콤한 멜로디나 유혹의 말에도 귀를 막을 수는 있다. 그러나 결코 냄새로부터 도망칠 수는 없다. 냄새는 호흡과 한 형제이기 때문이다. 살기 원하는 사람이라면 냄새가 자신의 형제와 함께 그들 사이에 나타날 때 그것을 도저히 막을 수 없는 법이다. 그렇게 인간의 가슴속으로 들어간 냄새는 그곳에서 관심과 무시, 혐오와 애착, 사랑과 증오의 범주에 따라 분류된다. 냄새를 지배하는 자, 바로 그가 인간의 마음도 지배하게 되는 것이다.’
파트리크 쥐스킨트의 소설 《향수》는 인간의 후각에 대한 가장 감각적이고 잔인한 이야기다. 냄새, 향기는 눈에 보이지 않는다. 들리기는커녕 애당초 손으로 만지거나 맛볼 수도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들숨과 날숨을 쉬는 사이에 절로 코를 통해 들어와 폐부에 스민다. 살아있는 한, 살기 위해 호흡하는 한 후각의 지배는 절대적이다. 후각을 잃는다고 당장 생명이 위태로운 건 아니다. 하지만 후각의 상실 혹은 장애는 많은 경우 미각 장애를 동반한다. 맛을 느끼지 못하는 불행과 함께 불이 났을 때 타는 냄새를 맡지 못하는 등 위험에 노출될 가능성이 커진다. 시각, 청각, 촉각, 미각만큼이나 후각도 의미가 있다. 새삼스레 탄복한다. 신비로워라! 모든 감각이 깨어있을 때 비로소 우리는 삶을 느끼며 살아가는 것이다.








삶을 자극하는 여행이라는 낯선 향

최초의 인문주의자로 불리는 에라스뮈스 왈, “누구에게나 자기의 방귀는 구수하다”고 했다. 악취일지라도 자기 것이라면 흠잡지 않는 아전인수를 지적한 잠언이려니와, 동시에 익숙해지면 어떤 악취에도 둔감해질 수 있다는 말이 아닐까? 후각은 생존을 위한 필수적인 조건이 아닌 까닭에 더 쉽게 무감각하고 둔해진다. 많은 사람이 부대끼는 대중교통 안에서 타인의 체취에 불쾌감을 느끼는 일은 일상다반사지만 정작 그들이 자신의 냄새 때문에 괴로워하는 모습은 볼 수가 없다. 나쁜 것만큼이나 좋은 것도 낯설어야 비로소 자극된다. 여행은 온통 새로운 냄새로 가득 차 있다. 우선은 떠나기 위해 찾는 터미널이나 공항의 냄새부터가 다르다. 버스나 배, 비행기의 엔진 냄새부터 빠르게 허기를 채워줄 주전부리들이 풍기는 음식 냄새까지 특유의 향이 난다. 무엇보다 진짜로 ‘떠나는 냄새’를 풍기는 것은 짐을 들고 빠르게 움직이는 사람들의 달뜬 숨결이다. 그것은 일상에서 벗어난 불안, 그리고 새롭게 펼쳐질 일상 너머에 대한 설렘의 기척이다. 떠나는 사람들의 옷깃에서는 마치 돌아오지 않을 듯 서늘한 결기의 냄새가 난다. 여행지의 냄새를 만드는 것은 일단 그곳 특유의 먹거리다. 향신료를 즐겨 사용하는 문화권이 아니더라도 먹는 음식은 사람의 체취가 되고 손길과 눈길이 닿는 모든 곳에 스민다. 남쪽 도시 통영은 비릿하고 짭짤한 냄새로, 제주도는 고기와 해산물의 기묘하게 조화어린 냄새로, 인도는 톡 쏘는 마살라 냄새로, 베트남은 고소한 고수 냄새로, 오사카는 달큼한 간장 냄새로, 미국은 공복에 패스트푸드 가게 앞을 지났던 바로 그 냄새로 떠오른다. 귀국길에 인천이나 김포 공항에서 마늘 혹은 김치로 대표되는 한식 냄새를 맡으면 비로소 안도감과 함께 배가 고파오는 이치가 여기에 있다.







기억을 소환하는 후각, 그리고 여행을 축복하는 감각들

음식 이외에도 기후와 환경이 뿜어내는 지극히 자연적인 냄새가 있다. 동해와 서해, 그리고 남해는 바다라도 모두 같은 바다일 수 없다. 동해에서 태어나 자란 나는 ‘다른’ 바다들을 만날 때마다 짐짓 당황하기까지 했는데, 물빛과 해변의 모양새만이 아니라 바다 냄새마저 완전히 달랐기 때문이다. 짙은 푸른빛에 서늘한 냄새를 풍기는 동해와 달리 서해는 검고 질퍽한 개펄에서 짭짤한 갯내를 끈덕지게 풍기고 있었다. 그런가 하면 남해는 부드러운 햇살 아래 펼쳐진 더운 흙과 따뜻한 바다가 갓 딴 굴처럼 싱싱하고 달큼한 냄새를 풍기고 있었다. 숲과 사막, 초원과 돌산이 각각의 숨결을 뿜어낸다. 변화무쌍한 계절과 기후에 맞춰 피어나는 꽃들이 저마다의 생명을 외친다. 후각은 결국 기억이나 추억과 결합되어 간직된다. 누군가는 코를 싸쥐는 열대 과일 두리안이나 손사래를 치는 고수와 마살라 같은 향신료도 그것을 맛있게 먹은 기억이 있다면 향기로운 냄새로 저장된다. 미운 사람의 역겨운 땀 냄새와 사랑하는 사람의 체취 섞인 향기는 실제로 얼마나 같고 얼마나 다를까? 오만과 편견, 사람과 사람 사이의 소통을 막는 두 개의 벽이 여행자의 감각에도 고스란히 작용한다. 삶은 여행이다. 왔다가 다시 떠난다. 좋은 여행자는 자기가 경험한 감각에 대한 오만을 내려놓고 편견 없이 세상의 감각을 향해 자신을 연다. 밝은 눈에 모든 것이 새롭게 보이고, 세심한 손끝에 모든 것이 반응하며, 열린 귀에 스쳐 가는 모든 소리가 들리고, 두려움 없는 혀에 다양한 맛이 펼쳐진다. 후각 또한 코를 크게 벌리고 가슴을 활짝 여는 순간 축복 같은 호흡으로 우리를 물들일 것이다.






소설가 김별아

1969년 강원도 강릉에서 태어나 연세대학교 국어국문학과를 졸업한 뒤 1993년 실천문학에 『닫힌 문 밖의 바람소리』를 발표하며 등단했다. 제1회 세계문학상을 수상한 『미실』을 비롯하여 장편소설 『논개』, 『백범』, 『열애』, 『가미가제 독고다이』, 『채홍』, 『불의 꽃』, 『어우동, 사랑으로 죽다』, 『탄실』 등과 산문집 『톨스토이처럼 죽고 싶다』, 『이 또한 지나가리라!』, 『괜찮다, 우리는 꽃필 수 있다』, 『삶은 홀수다』, 『스무 살 아들에게』, 『빛나는 말 가만한 생각』 등을 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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