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oul Trip

제주 올레길에서 만난 나

글 이수정(울산시 중구)






나는 스물다섯 살에 사회에 첫 발을 내디뎠다. 하고 싶은 일이 딱히 없었기에 적당한 회사에 지원해 직장생활을 시작했다. 처음 몇 달은 적응하느라 정신없었지만, 일이 익숙해지자 온종일 사무실 의자에만 앉아 있는 생활이 답답하게 느껴졌다. 일이 따분해지니 실수도 잦았다. 실수만큼이나 자책도 늘어, 어느새 낮아진 자존감으로 2년 만에 회사를 나왔다. 어딘가로 훌쩍 떠나고 싶었던 나는 제주행 비행기 표를 끊었다.



제주 올레길을 걸으며 정말 많은 사람들을 만났다. 그때마다 나는 답을 구하듯 사람들에게 무슨 일을 하느냐고 물어봤다. 공무원부터 사회단체 활동가, 연애 컨설턴트, 의사, 기자, 주부, 입사를 앞둔 사회초년생, 말년 휴가를 받아 여행 중인 군인 등 생김새만큼이나 삶의 형태도 다양했다. 가장 인상 깊었던 올레길은 4코스였다. 23km에 달하는 긴 코스였기에 단단히 마음먹고 도전했다. 절반쯤 걸었을 때 우연히 비슷한 또래 두 명을 만났다. 그들도 올레길에서 만난 사이였다고 했다. 어느새 우린 마치 오래 전부터 알던 친구처럼 편하게 이야기를 나눴다. 4코스가 끝날 때쯤 우리 앞에 바다가 펼쳐졌고, 우린 약속이라도 한 듯이 바다를 바라보며 자리 잡고 앉아 "행복해!"라고 외쳤다. 좋은 사람들이 곁에 있고, 바람은 한없이 부드러웠고, 눈앞에는 하늘과 바다로 온통 푸른빛이었다. 게다가 무려 23km를 완주했다는 만족감에 더없이 행복한 순간이었다.

여행하면서 누군가를 만나 함께한 날도 있었지만 온종일 혼자인 날도 있었다. 혼자일 때도 외롭진 않았다. 오롯이 나에게 집중할 수 있는 시간이었기 때문이다. 떠나봐야 비로소 나를 볼 수 있는 것 같다. 한 발 떨어져서 보니 나는 낯가림이 없고 새로운 사람을 만나길 즐기는 사람이었다. 한 곳에 머물기보다 몸을 움직이는 걸 좋아했다. 첫 직장에서 겪은 우울감은 내 무지나 무능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라 맞지 않는 곳에 있어 불편했던 것임을 깨달았다. 보름간의 여행을 마치고 돌아온 뒤 나에게 맞는 직업을 찾기 위해 몇 번의 입사와 퇴사를 거쳤고, 지금은 내 일을 찾아 보람도 느끼면서 즐겁게 일하고 있다.

나는 어느덧 30대 중반이 되었다. 지금도 여전히 직업과 삶에 대해 고민하지만 이제는 우울해하거나 자책하지 않는다. 9년 전 올레길을 걸으며 위로 받았던 것처럼 지금도 종종 혼자 하는 여행을 통해 내 감정을 돌아보며 나를 더 이해하고 사랑하려고 한다. 이렇게 조금씩 행복에 다가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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