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bout travel

도란도란, 낯선 곳에서 우리가 나눈 이야기들

글 정여울




“걱정마요, 이제 휴일이잖아요”
스위스의 아름다운 도시 루가노로 떠났을 때, 비행기와 기차 타는 시간이 워낙 길어 무척 피곤했던 나는 숙소에 도착하자마자 ‘어서 눕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때 호텔 로비에서 너무도 사랑스러운 카드를 보았다. 영어로 표기된 카드에는 ‘우리 호텔 핫초코와 크루아상이 무척 맛있으니 꼭 먹어보라, 모든 투숙객에게 무료로 제공된다’는 내용이 적혀 있었다. 그런데 그 내용을 표현한 문장이 재미있었다. “칼로리를 걱정하시나요? 설탕 함량을 걱정하시나요? 와우, 이제 휴일이잖아요! 모든 걱정일랑 저 멀리 던져버리고 당장 이 환상적인 핫초코를 쭉 들이켜요!” 그 문장을 읽자마자 피곤이 싹 달아나고 얼굴에 웃음꽃이 피었다. 호텔직원들의 환한 미소도 좋았지만, 이렇게 카드 한 장으로 손님을 행복하게 해주는 그들의 마음 씀씀이가 좋았다. 이것이 환대로구나, 누구라도 이 호텔을 좋아하지 않을 수 없겠구나 싶었다.



“우린 먼 곳을 사랑하는 여행자군요”
뮌헨에서 프라하로 가는 기차 안에서는 일 년에 한 번씩 꼭 배낭여행을 떠나신다는 노부부를 만났다. 그들은 올해는 프라하로 가지만 작년과 재작년에는 태국과 베트남 등 아시아 국가로 주로 여행을 다녔다면서 ‘아이 러브 아시아’를 연발하셨다. 나는 더듬거리는 독일어로 이렇게 말했다. “나는 아시아 사람이다 보니, 가까운 아시아보다는 머나먼 유럽이 더 이국적으로 느껴져서 좋은가 봐요.” 할머니는 고개를 끄덕이며 미소 지었다. “나는 유럽 사람이다 보니 아시아가 좋더라고요. 나는 유럽에서 태어난 아시아 마니아, 당신은 아시아에서 태어난 유럽 마니아군요.” 나는 우리 모두 ‘먼 곳을 좋아하는 사람들’이라는 생각이 들어 이렇게 말했다. “멀면 멀수록, 더 신비로운가 봐요. 우리 모두 ‘먼 곳을 사랑하는 여행자들’이네요.” 할머니는 “아무리 멀어도, 그곳이 아름답기만 하면 다 좋다”고 하셨다. 나도 그랬다. 비행기를 두 번씩 갈아타기도 하고, 아무리 교통이 복잡해도, ‘그곳에 내가 원하는 어떤 풍경이 있기만 하다면’ 불원천리하고 찾아가는 여행 중독자, 그런 사람이 바로 나였다. 할머니와 나는 오랜 시간 대화하지는 못했지만 서로가 매우 ‘닮은 사람’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여름휴가 때는 어디로 가세요?”
더블린의 택시운전사와 나눈 대화도 아름다운 추억으로 남아 있다. 턱수염이 멋진 나이 지긋한 기사님께 물어보았다. “더블린에서 기사님이 개인적으로 가장 좋아하는 장소는 어딘가요?” 기사님은 친근하게 미소를 지으며 말씀하셨다. “내가 더블린에서 가장 좋아하는 장소는 우리집 침대랍니다. 매우 푹신하고, 아늑하고, 궁전 같은 곳이지요.” 나도 덩달아 따라 웃으며, 나도 우리집 침대가 그립다고 말씀드렸다. “여름휴가 때는 어디로 가세요?” “아, 나는 따뜻한 나라 스페인 남부로 떠난답니다. 말라가 해변에서 늘 똑같은 호텔, 늘 똑같은 방에 찾아가요. 주인은 늘 친절한 미소, 항상 맛있는 음식으로 매년 여름 우리 가족을 반겨준답니다.” 새로운 장소를 향해 끊임없이 떠나는 것을 좋아하는 나와는 달리, 기사님은 늘 같은 장소로 떠나는 것을 좋아하신다고. 어쩌면 끊임없이 새로운 장소를 찾아 떠나는 나는 ‘쉬는 법’을 잘 모르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와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가만히 한 장소에 머무르면서 파란 하늘과 에메랄드빛 바다만으로도 천국에 왔다는 느낌이 드는 그런 장소에서 며칠만이라도 진정한 휴식을 가져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당신이 원하는 곳에 데려다주리다”
비엔나에서는 길 잃은 나를 아무런 대가없이 도와주신 천사 같은 할아버지를 만났다. 내가 길을 잃어 쩔쩔매고 있는 모습을 본 할아버지는 내게 먼저 다가와 ‘어딜 가고 싶냐’고 묻고는 여기는 어디며, 지도에서 여기쯤이며, 이렇게 설명을 해주시다가, 마침내 이렇게 말씀하셨다. “아, 안되겠다! 내가 직접 데려다주는 게 낫겠어!” 할아버지는 자신의 자동차를 직접 운전해서 내가 원하는 장소까지 데려다주시며 비엔나의 온갖 명소와 맛있는 음식과 자신이 자주 가는 장소를 소개해주셨다. 낯선 장소에서 길을 잃어버려 간이 콩알만해진 나에게, 비엔나의 이름 모를 할아버지는 ‘마침내 내가 찾고 있는 것’이 단지 장소가 아니라 인간의 따스한 마음임을 깨닫게 해주셨다. 여행자의 기쁨은 바로 이런 것이다. 낯선 장소에서, 단지 내가 여행자라는 이유만으로, 친절하고, 다정하고, 따스하게 맞아주는 사람들. 아름다운 장소보다 때로는 더 아름다운 사람들을 만난다는 것, 그것이 여행이 우리에게 선물하는 최고의 축복이다.








정여울 작가.

저서로 《마흔에 관하여》《그때 알았더라면 좋았을 것들》 《늘 괜찮다 말하는 당신에게》 등이 있다.
현재 네이버 오디오클립 '당신의 감성을 깨우는 글쓰기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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