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oul Trip

싱가포르에서 쓴 편지

글 이소영






선생님, 선생님 계신 싱가포르에 와보니 ‘울창하다’는 표현에 이렇게나 잘 어울리는 녹음이며, 꽃도 참 예쁘고 물도 많습니다. 하지만 34도를 넘나드는 더위 속을 걷고 있노라면 손에 있는 것을 다 버리고 아무 쇼핑센터로든지 뛰어 들어가고만 싶어요.

오늘은 여행의 첫 일정이었던 싱가포르 국립박물관에 땀을 많이 흘리며 찾아갔는데, 하필 박물관이 공사 중이었습니다. 그래서 싱가포르에 가면 꼭 들러야 한다는 명소 멀라이언 파크에서 커피를 한 잔 마시기로 계획을 변경했습니다. 역시나 땀을 뻘뻘 흘리며 걸어갔지요. 그런데 멀라이언이 하필 오늘 ‘목욕 중’이라지 뭐예요? 그래도 커피는 맛있었답니다. 이곳에 세계에서 100번째로 문을 연 별다방이 있다고 해서 한 번 들러보았지요. 왜, 어느 여행지에 가든 만날 수 있는 익숙한 체인점이 있잖아요. 별다방이나 M햄버거 같은 곳 말이에요. 물론 독특한 현지 음식점을 찾아가는 것도 여행의 즐거움이지만, 가끔은 세계 어디를 가든 똑같은 모습을 한 대형 체인점을 방문해보는 것도 저는 좋은 것 같아요. 익숙한 장소가 주는 예측 가능함은 낯선 여행지에서 큰 안도감을 주거든요. 특히나 오늘처럼 멀라이언 없는 멀라이언 파크에서 길을 잃은 저에게 그런 안도감이 더욱 필요했던 것 같아요.

더위를 식히고 다시 나선 길, 반나절만에 덥고 습한 싱가포르의 날씨에 적응이 되더라고요.(어쩌면 포기한 건지도 모르겠어요.) 그때부터 다리에 힘이 실리고 마음이 가벼워지는 것을 느꼈습니다. 걷고 또 걸어도 제 길을 계속해서 내어주는 이 도시가 어느덧 저를 밀어주고 있는 기분이 들었어요. 그러다 영화 <아바타>를 떠올리게 하는 슈퍼트리 가는 길에 빗방울이 톡톡 떨어졌고, 뜨거운 도시를 걸어 다니느라 불이 난 듯 쓰라렸던 발바닥이 빗물에 자박자박 잠기기 시작했습니다. 빗방울이 고생한 저를 ‘괜찮아, 괜찮아.’ 하며 달래주는 것 같았어요.

미술학도인 저는 라셀레 예술대학에도 한 번 가보고 싶었는데요. 가는 길에 운 좋게도 그 학교 학생을 만나 이야기해볼 기회도 얻었답니다. 짐이 많아 보이길래 그 친구의 실습 마네킹을 들어주고 학교 구석구석을 구경할 수 있었어요.

그리고 선생님, 저는 지금 강가에 앉아있습니다. 아무리 오랜만에 만나도, 만나면 늘 보이지 않는 안색까지 읽어주시는 선생님 덕분에 저는 이번에도 선생님 앞에서 열일곱 살 소녀처럼 훌쩍거렸지요. 그래도 선생님 앞에서는 그게 부끄럽지 않아 다행이에요.

어쩌면요 선생님, 세상에는 저마다의 슬픔보다 더 무거운 사랑이 있는 것 같아요. 그것이 우리의 볼을 쓸어주고 정수리를 지긋이 눌러주는 동안 우리가 더 크게 자라는 게 아닐까 싶어요. 정성껏 차려주신 밥상과 손수 만들어주신 약밥 덕분에 타지에서도 집에 온 듯 푸근한 기분이었습니다. 덕분에 지는 노을이 외롭다고 느껴지기보다 고즈넉해서 좋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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